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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자연한국어

보리와 노래하는 주전자

보리는 할머니에게 "비 와요!" 하고 말해 주고 싶었어요.

하늘 끝에 먹구름이 보였거든요.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멍석 위에 가득 널려 있었어요. 비가 오면 고추가 다 젖을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는 저 멀리 밭 끝에서 풀을 뽑고 있었어요.

게다가 매미가 맴맴맴, 맴맴맴 울었어요. 나무마다 팝콘 튀기는 것처럼 시끄러웠어요.

"할머니! 비 와요!"

보리는 있는 힘껏 소리쳤어요. 하지만 목소리는 매미 소리 속에 풍덩 빠져 버렸어요. 할머니는 돌아보지 않았어요.

보리는 호루라기를 찾았어요. 하지만 호루라기는 아침에 똑 부러졌어요. 보리는 두 팔을 붕붕 흔들었어요. 할머니는 등을 보인 채 풀만 뽑았어요. 구름이 한 뼘 더 가까이 왔어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보리는 발을 동동 굴렀어요. 그때 우물가의 주전자가 보였어요. 이 마을 주전자는 물을 담는 사람마다 다른 노래를 불러요. 할머니가 담으면 "뽀로롱 뽀로롱", 아빠가 담으면 "부웅 부웅" 하고요.

보리가 담으면 어떤 노래가 날까요?

보리는 주전자를 펌프 밑에 놓고 물을 콸콸 담았어요.

"삐요로로롱!"

높고 가느다란 소리가 났어요. 나무 위의 매미가 깜짝 놀라서 "삐요... 맴?" 하고 따라 했어요. 보리는 웃음이 터졌어요. 이 소리라면 매미 소리 사이로도 들릴 것 같았어요.

보리는 주전자를 안고 밭으로 달렸어요. 달릴 때마다 물이 출렁, 주전자가 삐요로로롱 노래했어요.

할머니가 허리를 펴고 돌아봤어요.

"어, 우리 보리 노래네?"

"할머니, 비 와요!"

할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그리고 보리 손을 잡고 마당으로 서둘러 걸었어요. 둘이서 멍석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처마 밑으로 끌어당겼어요. 빨간 고추가 데굴데굴 흔들렸어요.

그 순간, 톡. 첫 빗방울이 장독 뚜껑에 떨어졌어요.

매미 소리가 뚝 그쳤어요. 보리 품속에서 주전자가 마지막으로 작게 울었어요.

"삐요."

그 위로 비가 토독토독 내렸어요.